6월 25일 - 6.25 전쟁
2008/06/24 22:09 in 세이노의 일상

저녁을 오랫만에 할머니 댁에서 먹었다.
뉴스를 보면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때 할머니께서 요즘 뉴스보면 미국 반대한다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큰일이라는 소리를 하셨다.
무슨 이야기시냐고 하니까 내일이 625 동란이 일어난 날이라고 하시면서...
그때 미국 아니었으면 우리 다 죽었다고 그러신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 생명의 은인이니 홀대하면 안된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이십대 후반에 625 전쟁을 겪으신 세대인데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처참했었겠구나 싶다.
하긴 지금으로부터 58년전의 이야기이니 내 부모님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할머니 가족은 그때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결혼한 상태라서 그때 할아버지와 같이 있어서 목숨을 건지셨지만...
나이차이가 많이 났었던 어린 막내 남동생은 강제로 물에 빠뜨려서 질식사 했고,
할머니의 어머님은 인민군에게 개처럼 맞아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갔던 생명들이 부지기수 였다고 하신다.
국군은 밀리고 또 밀리고..
할아버지께서는 경찰간부였는데 만약 민간인 신분이었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일사후퇴때 강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가셨을거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탔던 배에는 경찰가족들만 따로 탔었다고 한다.
그때 피난민들은 배안에서 솜이불을 겹겹으로 뒤집어쓰고 (총알의 회전력을 감소시켜 뚫지못하는 효과가 있음) 웅크리고 있었는데 말그대로 총알이 비처럼 쏟아져서 나중에 강을 건너고 보니 여기저기 총알이 박힌 솜이불이 묵직했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중에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도 서울을 다시 수복하게 되었을때 물건이건 사람이건...
제대로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시면서 목이 메이시는지 물을 여러잔 드셨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때 당시를 겪었던 세대들은 미국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이 나처럼 젊은 사람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겠구나 싶다.
뉴스를 보면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때 할머니께서 요즘 뉴스보면 미국 반대한다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큰일이라는 소리를 하셨다.
무슨 이야기시냐고 하니까 내일이 625 동란이 일어난 날이라고 하시면서...
그때 미국 아니었으면 우리 다 죽었다고 그러신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 생명의 은인이니 홀대하면 안된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이십대 후반에 625 전쟁을 겪으신 세대인데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처참했었겠구나 싶다.
하긴 지금으로부터 58년전의 이야기이니 내 부모님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할머니 가족은 그때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결혼한 상태라서 그때 할아버지와 같이 있어서 목숨을 건지셨지만...
나이차이가 많이 났었던 어린 막내 남동생은 강제로 물에 빠뜨려서 질식사 했고,
할머니의 어머님은 인민군에게 개처럼 맞아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갔던 생명들이 부지기수 였다고 하신다.
국군은 밀리고 또 밀리고..
할아버지께서는 경찰간부였는데 만약 민간인 신분이었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일사후퇴때 강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가셨을거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탔던 배에는 경찰가족들만 따로 탔었다고 한다.
그때 피난민들은 배안에서 솜이불을 겹겹으로 뒤집어쓰고 (총알의 회전력을 감소시켜 뚫지못하는 효과가 있음) 웅크리고 있었는데 말그대로 총알이 비처럼 쏟아져서 나중에 강을 건너고 보니 여기저기 총알이 박힌 솜이불이 묵직했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중에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도 서울을 다시 수복하게 되었을때 물건이건 사람이건...
제대로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시면서 목이 메이시는지 물을 여러잔 드셨다.
시대가 바뀌어도 그때 당시를 겪었던 세대들은 미국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이 나처럼 젊은 사람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겠구나 싶다.

